[축알못이라도 칼럼이 쓰고 싶어!] 이스티클롤은 어떻게 알힐랄을 격파했는가?
자이언트 킬링.
축구에서 하부 리그 팀, 혹은 아마추어 팀이 상위 리그 팀을 이기는 이변이 일어날 때 주로 사용하는 축구 용어다. 꼭 하부 리그 팀, 아마추어 팀이 아니더라도 포괄적으로 2018 러시아 월드컵 한국이 독일을 2-0으로 이긴 것처럼 약팀이 강팀을 잡을 때 주로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는 자이언트 킬링을 보며 열광한다. 우리가 영화를 볼 때 열린 결말이나 반전에 열광하는 것처럼 말이다. 필자도 사람인지라 역시 다른 축구팬들과 마찬가지로 자이언트 킬링에 열광하고 큰 관심을 가진다. 물론 자이언트 킬링 당하는 게 내가 응원하는 팀일 때엔 예외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 자이언트 킬링에 열광하는 필자의 이목을 집중시킨 경기가 있었다. AFC 챔피언스 리그 A조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위치한 프린스 파이샬 빈 파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스티클롤과 알힐랄 간 맞대결에서 이스티클롤이 알힐랄을 4-1로 대파한 것. 불과 사흘 전만 하더라도 알힐랄은 3-1로 이겼지만, 불과 사흘 만에 다시 열린 경기에선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자이언트 킬링? 이건 못 참지. 필자는 즉시 이스티클롤 VS 알힐랄 칼럼을 쓰겠다는 굳은 결심을 다졌다. 이번 경기 대승과 샤바브 알아흘리 두바이 FC를 상대로 1-0으로 승리하며 A조 1위로 올라섰고 녹아웃 스테이지 진출을 확정 지었다. 이스티클롤은 어떻게 강호 알힐랄을 잡을 수 있었을까?
3차전 패배? 열세? 이스티클롤에겐 통하지 않았다
알힐랄은 4-2-3-1 포메이션으로 나왔다. 주목할 점은 알힐랄은 3차전에서 사용했던 포메이션, 베스트 11 멤버까지 똑같이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알힐랄은 지난 3차전에서 이 전술로 이스티클롤을 3-1로 이겼던 만큼, 4차전에서도 3차전과 같은 포메이션을 들고 나오면 3차전과 마찬가지로 승리를 거둬 1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 하에 4-2-3-1 포메이션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스티클롤은 3-5-2 포메이션으로 맞섰다. 무빈 에르가셰프 감독(기존 감독인 비탈리 레브첸코 감독이 ACL에 나가는 데 필요한 코칭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지 못해 ACL 경기 시 임시 감독으로 선임)의 이스티클롤은 평소 사용하는 백3 시스템을 알힐랄 전에도 들고 나왔다. 이스티클롤도 3차전과 비슷한 포메이션과 베스트 11 명단을 들고 나왔는데, 이스티클롤은 알힐랄과 달리 베스트 11에서 약간의 변화를 줬다. 우측면 미드필더 자리에 바흐다트 하노노프 대신 마누체흐르 사파로프를, 투톱에서 마누체흐르 잘릴로프의 파트너로 후세인 도간 대시 루스탐 소이로프를 기용한 것이다. 그리고 이 변화는,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알힐랄은 초반 주로 후방에서 센터백들이 중원으로 짧은 패스를 한 후 미드필더들이 측면으로 빌드업을 전개하며 차근차근 패스를 통해 경기를 풀어나가는 플레이를 했고, 이스티클롤은 상대방이 볼을 소유하면 적극적으로 라인을 올리면서 압박하며 볼 소유권 탈환을 추구하고자 했다. 팽팽하던 승부는 24분 알힐랄의 바페팀비 고미스가 선제골을 넣으며 앞서 나가며 깨졌다. 측면 크로스 이후 고미스가 이스티클롤 센터백의 빈틈을 노려 페널티 박스 안으로 침투한 후 헤더로 골을 성공시키며 이 전략은 약간의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리드는 오래가지 못했다. 최전방까지 압박에 가담하며 거세게 몰아붙였던 이스티클롤은 38분 잘릴로프가 스로인 상황에서 알리셰르 잘릴로프의 땅볼 크로스를 받아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알샤라니가 몸을 날려봤지만 역부족이었다. 3차전 하노노프의 동점골 기점이 되었던 잘릴로프가 이번엔 본인이 직접 동점골을 마무리지었다. 이후 잘릴로프의 강한 태클로 볼 소유권을 되찾은 이스티클롤은 곧바로 카운터 어택에 들어갔다. 공격 숫자보다 수비 숫자가 많은 상황. 그러나 소이로프의 패스를 받은 잘릴로프가 때린 중거리 슛이 그대로 골망으로 빨려 들어가며 역전에 성공한다. 압둘라 알마유프가 방향까진 예측했지만 슈팅을 막기엔 너무나도 강했다.
2-1. 전반 이스티클롤의 리드라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반전이 종료됐다. 이스티클롤은 전반전 점유율이 25%에 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장에서 점점 더 균형잡힌 모습을 보이며 찬스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후반에도 이스티클롤의 압박은 여전히 거셌다. 리드를 뺏긴 알힐랄은 후반 시작과 동시에 모하메드 알브레이크와 하탄 바헤브리를 빼고 아미리 쿠르디와 살렘 알다우사리를 투입해 역전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아부으려 했다.
그러나 오히려 추가골을 넣은 팀은 이스티클롤이었다. 49분 프리킥 이후 센터백의 롱패스를 받은 마누체흐르 사파로프가 알샤라니를 제치고 크로스를 올린 것이 그대로 알힐랄의 골망으로 빨려 들어가는 일명 '크로슛'으로 골을 넣으며 3-1로 추가점을 냈다.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더 몰아붙인 이스티클롤은 결국 52분 페널티 박스 안으로 침투한 사파로프가 쐐기골을 넣으며 4-1이라는 충격적인 스코어를 만든다.
졸지에 4실점을 허용한 알 사드는 급하게 압둘라 오타이프와 후반 시작과 함께 교체로 투입한 살렘 알다우사리를 빼고 알셰흐리, 파와즈 알토라이스를 투입했다. 알힐랄은 재교체 카드까지 사용하는 강수를 두며 경기 판도를 바꿔보려 했으나 이스티클롤의 탄탄한 수비와 압박에 밀려 마땅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결국 알힐랄의 추가 득점 없이 경기는 4-1로 이스티클랄의 대승으로 마무리됐다. 충격과 공포였다. 알힐랄 팬들은 예상 밖 졸전에 분노했고, 이는 SNS에 선수단과 프런트에 대한 비난글을 쓰게 되는 원인이 된다.(알힐랄 소속 장현수는 결국 비난을 이기지 못하고 본인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폐쇄했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고 말했지만 이스티클롤이 이길 자격이 충분한 팀이었다.
이스티클롤과 알힐랄의 경기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알힐랄이 아무리 애를 썼지만 결국 결과를 내는 건 이스티클롤이더라'라고 말할 수 있다. 그만큼 공, 수 양면에서 이스티클롤이 알힐랄보다 효율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스티클롤은 이 날 점유율, 슈팅, 패스 성공에서 알힐랄에 밀렸지만 강한 압박과 태클을 통한 패스 루트 차단을 통해 상대의 공격을 늦추거나 끊어냈고 볼 소유권을 가져오며 공격 전개를 했다. 알힐랄은 끌려가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마무리를 짓고 추격하려 했지만 빈번히 압박과 태클을 통한 패스 차단, 그리고 파울로 공격 흐름을 끊기며 추가 득점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공중볼 경합 성공이 높은 것도 눈에 띈다. 앞서 말했지만, 알힐랄은 중원에서 측면으로 빌드업 후 크로스를 이용한 마무리를 주로 사용했다. 이 공격 루트가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공중볼에서의 우위다. 실제로 알힐랄의 유일한 득점도 측면 크로스 이후 고미스가 이스티클롤 센터백의 빈틈을 노려 페널티 박스 안으로 침투한 후 헤더로 골을 성공시킨 것이다. 그만큼 알힐랄 입장에선 공중볼 우위가 득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것이다. 하지만 4차전에선 이 방식이 많이 통하진 않았다. 크로스를 허용하기 이전에도 측면이나 중원에서 미리 차단하거나 설령 크로스를 허용하더라도 백3를 담당하는 센터백들이 헤더로 차단하며 알힐랄의 공격을 무력하게 했다. 여기에 이스티클롤의 골키퍼 루스탐 야티모프의 맹활약도 이스티클롤의 승리에 일조했다. 팀의 실점 위기 때에 결정적인 선방을 해내며 실점 위기에서 구해냈다. 실제로 야티모프는 이 날 선방 5회, 다이빙 세이브 1회, 박스 내 세이브 3회, 펀칭 2회를 기록하며 수문장으로서 제 역할을 했다.
필자가 경기를 지켜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장면을 발견했다. 바로 3차전과 4차전, 똑같은 루트로 실점한 장면이 있다는 것이다. 3차전 알힐랄이 기록한 유일한 실점 장면에선 알리 알부라히와 야시르 알샤라니가 볼을 소유한 잘릴로프에만 집중 마크하는 동안 하노노프가 측면에서 페널티 박스 안으로 돌파 후 그대로 슈팅하며 골을 넣었다. 하노노프를 막아야 할 알샤라니는 볼에만 집중하다 공간을 파고드는 상대를 보지 못하며 동점골을 헌납했다.
4차전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됐다. 3차전과 마찬가지로 최전방 소이로프가 볼을 소유하자 페널티 박스 주변에 있던 알힐랄 수비진 전부 소이로프에 집중했고 페널티 박스 부근에 있었던 사파로프는 어떠한 방해 없이 무리없이 페널티 박스 안으로 들어왔다. 아미리 쿠르디가 뒤늦게 이를 파악하고 사파로프를 마킹하려 접근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알힐랄 입장에선 너무나도 뼈 아픈 실점이었다.
마누체흐르 사파로프, 이 선수를 주목하라
필자가 이스티클롤 VS 알힐랄 경기를 쭉 지켜보면서 눈에 띄었던 선수가 있었는데, 등번호 55번을 달고 경기에 출전한 이스티클롤의 마누체흐르 사파로프(Манучехр Сафаров)가 그 주인공이었다. 2001년 5월 3일 생인 마누체흐르 사파로프는 사이드백, 측면 미드필더까지 소화 가능한 선수다. 이 날 사파로프는 3-5-2 포메이션에서 오른쪽 미드필더로 출전했음에도 멀티골을 넣으며 팀의 승리에 큰 공을 세웠다.
3-5-2 포메이션에서 측면 미드필더는 상대 위치의 빈틈을 찾아내는 공격 위치 선정 능력, 돌파력, 크로스, 공격력이 뛰어난 선수를 주로 배치한다. 사파로프는 알힐랄과의 4차전에서 이 역할을 훌륭히 소화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3번째 골 당시 크로슛, 4번째 골 당시 페널티 박스 안 빈 공간을 잘 찾아들어간 위치 선정까지. 사파로프는 측면에서 맹활약하며 최전방 잘릴로프와 함께 이스티클롤의 공격을 이끌었다. 알힐랄의 알샤라니는 사파로프의 적극적인 오버래핑을 막느라, 볼을 잡을 땐 사파로프의 끈끈한 수비를 뚫어내느라 크게 고생했다. 마치 10여 년 전 UEFA 챔피언스리그 인테르 Vs 토트넘 경기 당시 베일을 막느라 고군분투했던 마이콘처럼 말이다. 만 19세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벌써 A매치 10경기를 돌파할 정도로 유망한 선수인 만큼, 앞으로 사파로프가 어떤 맹활약을 펼칠지 기대된다.
조별리그가 단 1경기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이스티클롤은 승점 10점으로 현재 근소하게 1위를 달리고 있다. 만약 마지막 경기를 지더라도 3위 샤바브 알아흘리가 얻을 수 있는 승점이 최대 7점이 되므로, 마지막 경기에서 미끄러지지 않는 이상 이스티클롤의 녹아웃 스테이지 진출은 사실상 확정에 가까워지고 있다. 창단 첫 조별리그 통과를 눈 앞에 둔 이스티클롤, 과연 녹아웃 스테이지에서 이스티클롤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이런 요소들을 관심 있게 지켜본다면 AFC 챔피언스 리그를 재밌게 볼 수 있는 또 다른 요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