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축알못이라도 칼럼이 쓰고 싶어!] 사상누각과 같은 축구굴기, 중국 축구에 대위기를 불러일으키다

뚜따전 2021. 10. 16.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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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축구는 2010년대 급격한 변화를 이뤄냈다. 2013년 광저우 헝다의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2015년 중국 공산당 주도 하에 시행한 축구굴기 이후 중국 슈퍼리그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축구 리그 중 하나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유럽, 남아메리카 유명 선수들과 지도자들이 중국 슈퍼리그로 향했고 아이커썬(에우케종), 가오라터(히카르두 굴라르), 쟝광타이(타이어스 브라우닝) 등 상당수 외국인 선수를 중국으로 귀화시키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줬다.

전국시대부터 진나라의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할 때까지 멸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일곱 국가를 지칭하는 전국 7웅으로 불린 슈퍼리그 내 7개 구단인 광저우 FC(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장쑤 FC(장쑤 쑤닝), 허베이 FC(허베이 화샤 싱푸), 상하이 하이강(상하이 상강), 상하이 선화, 베이징 궈안, 산둥 타이샨(산둥 루넝)은 경쟁적으로 좋은 선수들과 감독을 영입했고 연간 한화 1200억 원이 넘는 자금을 쓰며 중국의 축구굴기를 이끄는 선봉장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러나 2020년대 현재 중국 축구는 중대한 위기에 놓여있다. 중국 슈퍼리그 내 신흥 강호로 떠오르던 톈진 톈하이(톈진 취안첸), 전국 7웅 중 하나인 장쑤 FC(장쑤 쑤닝)이 모기업의 재정 악화로 해체한데 이어 올해 하반기 2010년대 초~중반 아시아를 호령했고 명성 있는 스타플레이어와 중국 대표팀 선수를 영입하고 여러 외국인 선수를 귀화시키며 중국 축구의 발전에 있어서 선봉장과도 같은 역할을 하던 광저우 FC(광저우 헝다 타오바오)또한 팀의 존폐 위기에 몰려 있는 상황이다. 이유는 모기업인 헝다그룹의 부채가 무려 130조 원에 달할 정도로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손준호의 산둥 타이산(산둥 루넝)의 경우 선수 임금체불이 적발되어 중국축구협회 FA컵에서 우승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이 박탈됐다. 상하이 선화의 모기업 녹지그룹도 현재 빚만 57조에 주가도 4분의 1로 내려앉았다. 다롄 프로(前 다롄 이팡)는 투자 기업이자 부동산 재벌인 완다그룹이 경영 악화로 역시 좋지 못한 상황이다. 이는 한때 중국 현지에서 서우푸(首富, 최고 부자라는 뜻)로 불린 부동산 재벌 완다그룹의 왕젠린(王健林)회장의 무분별한 차입 경영으로 인한 경영 악화가 나타났고 이로 인해 최소 4000억 위안(한화 68조 원)의 부채를 내며 서우푸와 발음이 같은 서우푸(首負, 최고 빚쟁이라는 뜻) 라는 말을 들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김민재가 있던 베이징 궈안 역시 모기업인 중허그룹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부동산 사업 실패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고 김종부 감독이 이끄는 허베이 FC(허베이 화샤 싱푸)도 부동산 사업을 하고 있는 싱푸그룹이 2021년 초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지원이 예년보다 크게 줄어 들었다.  임금 체불이 이어지고 있고 심지어 허베이 FC가 CFA컵을 치루러 다롄으로 가야 하는데 교통비와 숙박비, 식비도 구단이 지원하지 못 하는 상황이어서 코칭스태프와 선수단 자비로 돈을 십시일반 모아 다롄으로 이동하고 외상으로 지낼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다.

이처럼 황금기와도 같던 2010년대 초~중반이 지나고 2010년대 후반~2020년대 초반 중국 슈퍼리그에는 재정난, 해체 등 부정적인 소식들이 많이 들려오고 있다. 또한 대표팀마저도 최종예선을 앞두고 슈퍼리그까지 중단하면서 9월부터 11월까지 중동 지역에서 베이스캠프를 차려 강력한 합숙 훈련을 실시하고 귀화선수들을 합류시켰음에도 대표팀의 최종예선 성적은 신통치 않고 국가대표팀에서 뛰는 핵심 선수들의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안 그래도 지갑을 닫아가는 중국 축구계로 인해 중국 축구가 저점 경향을 보이는데 향후에는 이보다 더 내려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고 있다.

필자는 중국 슈퍼리그에 찾아온 위기를 크게 3가지로 분류한다. 첫 번째는 1999년 승부조작, 두 번째는 2009년 10월에 밝혀진 승부조작,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현재 중국 경제 불황과 중국 기업들의 경영난으로 인해 이어지고 있는 축구단 해체 러쉬 및 재정 불안이다.

중국 내 축구 리그는 1950년대 실업축구를 시작으로 30년이 지난 1980년 세미프로 리그인 갑급리그를 출범하며 중국 축구 리그 역사가 시작된다. 1983년 이웃 나라 한국에서 프로축구 리그인 슈퍼리그를 출범한 이후 한국 축구의 성장을 유심히 지켜보던 중국축구협회는 1993년 일본이 실업축구 리그였던 JSL(재팬 사커리그)을 대신하는 프로축구 리그 J리그를 창설하자 1년 만인 1994년 1부(갑급 A조)와 2부(갑급 B조)로 구성한 '중국 갑급리그'를 창설했다. 중국 갑급리그는 외국인 선수와 감독 영입을 허용하고 홈 & 어웨이 방식의 리그 시스템을 도입하며 중국 축구 첫 프로축구 리그는 이렇게 첫 걸음을 떼게 된다.

12팀으로 출발해 차근차근 팀 수를 늘려가며 성장하던 갑급 A리그는 첫 번째 위기를 맞는다. 바로 1999년에 터진 승부조작 스캔들. 2부리그 강등 위기에 몰린 선양 화양(광저우 푸리의 전신)이 최종전에서 충칭 룽신(충칭 량장 징지의 전신) 선수들을 매수해 2-1로 승리한 사실이 드러났고 승부조작을 주도한 장지안치앙 중국축구협회 심판위원장과 선양 화양 구단주는 중국 축구계에서 영구적으로 퇴출됐다.

이 사건은 중국 축구에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리그 시스템의 개편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은 중국축구협회가 2002년 새로운 축구 리그를 창설하려 했기 때문이다. 중국축구협회는 갑급 A리그에 소속된 16개 팀들을 대상으로 유럽 축구단 수준의 프런트 및 선수단 운영, 재정 투명성, 유스 시스템 등의 조건을 제시한 후 12팀을 추려내며 2004년 중국 슈퍼리그를 창설하며 새로운 프로 최상위 리그를 만들었다. 아울러 2부리그 역할을 하던 중국 갑급 B리그도 중국 갑급리그로 개칭했으며, 3부리그 역할을 하는 중국 을급리그를 출범했다. 2009년부터는 슈퍼리그 최하위 두 팀과 갑급리그 최상위 두 팀이 자리를 맞바꾸는 승강제도 도입했다.

첫 번째 승부조작 사건 이후 힘겹게 자립 기반을 키워가던 중국 슈퍼리그는 다시 한 번 승부조작이 터지며 위기에 빠진다. 청두 블레이즈(청두 톈청의 전신, 2015년 해체)가 2008시즌 중국 슈퍼리그 잔류를 위해 상대팀 선수와 심판에게 1인당 100만 위안(한화 약 1억 8000만 원)규모의 돈을 건네며 매수를 저질렀고, 이를 바탕으로 역전승을 거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

수사에 나선 중국 공안부는 2003년부터 슈퍼리그에서 벌어진 여러 승부조작 사례를 추가로 찾아내면서 리그는 공황 상태에 빠진다. 중국축구협회는 2010년 2월 21일 청두 블레이즈를 광저우 헝다와 함께 중국 을급리그로 강등시키는 징계를 내렸다. 또한 칭다오 하이리펑은 갑급리그 등록 취소와 20만 위안을, 상하이 선화는 2003년 중국 슈퍼리그 챔피언 타이틀을 박탈과 2013년 중국 슈퍼리그에서 승점 6점을 감점 및 100만 위안의 벌금을, 톈진 터다는 2013 시즌 중국 슈퍼리그 승점 6점 감점과 100만 위안의 벌금을, 옌볜 푸더는 2013 시즌 중국 갑급리그 승점 3점 감점과 50만 위안의 벌금을, 산둥 루넝 타이산은 100만 위안의 벌금을 부과받고 이외에도 창춘 야타이, 장쑤 셰안티, 허난 젠예는 50만 위안 상당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이어 뇌물수수 혐의로 량이민 부주석이 징역 12년 형, 난융 부주석과 장지엔창 심판위원장이 10년 6개월 형을 선고받는 등 중국축구협회 수뇌부가 하루아침에 철창살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2번의 승부조작 스캔들로 인해 슈퍼리그 해체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상당수 나오던 이 시점이 결과적으로 중국 축구에 있어 새로운 시작점이 됐다. 2010년대 중국 축구계에는 승부조작에 실망해 중국 슈퍼리그를 외면한 팬들을 수준 높은 경기력으로 다시 경기장으로 오게 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이후 광저우 헝다 등 일부 구단들이 유럽과 남미의 스타 플레이어들을 경쟁적으로 영입하며 부활의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시진핑 주석은 축구굴기를 통해 침체되어 있던 중국 축구, 특히 중국 슈퍼리그와 중국 대표팀을 경쟁력 있게 만들고자 했다. © 더 가디언

여기에 2015년 시진핑 주석이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능력이 있게 만들고, 중국 슈퍼리그를 아시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중국 축구의 부흥을 불러일으키겠다는 축구굴기(蹴球崛起) 프로젝트를 시행하며 중국 축구는 성장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중국 슈퍼리그의 경쟁력을 키우고 이를 바탕으로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실력을 키워 궁극적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고 월드컵을 개최하겠다는 발상이 담긴 것이다.

시진핑 주석의 축구굴기 이후 중국 공산당의 비호를 받는 부동산 재벌들이 막대한 자금을 풀어 중국 슈퍼리그 발전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후 부동산 사업을 하는 헝다그룹이 모기업인 광저우 헝다는 유럽에서 잘 알려진 명장 마르첼로 리피,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를 막대한 자금력으로 선임했으며 역시 부동산 기업인 녹지그룹을 모기업으로 둔 상하이 선화는 니콜라스 아넬카, 디디에 드록바 등의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들을 영입한 바 있다. 이런 무지막지한 투자가 이어진 결과 2013년, 2015년 광저우 헝다가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또 장기적인 유소년 인재 육성을 목표로 중국의 고등학교 입학 시험에서 체육 과목 구기 테스트 종목에 축구를 공식적으로 포함시켰고 체육시간에서도 축구의 비중을 대폭 높였다. 거기다 전국에 무려 2만 개나 되는 축구 전문학교를 설립해 장기적으로 중국 축구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자 했다.

이처럼 축구굴기 이후 중국 축구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하며 조금씩 성장해나가려 했다. 하지만 축구굴기와 중국 축구 앞에 최대 변수가 나타난다. 바로 코로나19 팬데믹이 중국을 뒤덮으며 중국 기업들의 자금 상황이 악화된 것. 이는 자연스레 중국 슈퍼리그에도 악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중국 슈퍼리그뿐만 아니라 갑급, 을급리그 구단 대부분이 모기업에 의존적인 성향을 띄고 있다. 즉, 모기업의 상황이 좋으면 구단도 좋지만 반대로 모기업의 상황이 어려워진다면 구단은 재정난에 시달리거나 심각한 경우 팀이 존폐 위기에 몰리고 해체까지 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축구굴기를 외친 최고 권력자의 마음을 사기 위해 체계적인 계획 없이 급하게 돈만 퍼부으며 ‘충성 경쟁’을 연상케 하는 치열하다 못해 과열된 내부 경쟁은 선수들 몸값에 거품을 끼는 부작용을 낳게 됐다.

최근 3년 동안 모기업의 경영난으로 인한 축구단 해체 러쉬는 중국 슈퍼리그를 위협하는 최대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구단 운영예산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인건비 문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모기업의 경영 악화 등 해체 러쉬 요인은 상당히 많다. 과도한 2019년 초 톈진 취안젠의 모기업 취안젠 그룹이 제품 과대광고, 다단계 판매 의혹으로 수위후이(束昱辉) 회장과 취안젠 그룹 임원이 한꺼번에 공안에 체포되어 주가가 폭락하고 하루아침에 해체 위기에 몰리자 톈진시 체육회에서 시민구단 형식으로 1년 동안 임시적으로 운영한 후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자 해체됐고 연변 푸더도 모기업 푸더생명이 경영난으로 인해 세금을 체납했고 푸더생명의 파산 이후 해체됐다. 랴오닝 FC도 임금 체불 누적으로 인한 파산 이후 해체됐고, 베이징 런허와 타이저우 유안다 등 많은 중국 내 축구단들이 모기업의 사정이 악화된 후 해체를 겪게 됐다. 중국 슈퍼리그, 갑급리그를 포함해 2015년부터 2021년까지 6년 동안 무려 11개 팀이 해체됐는데, 이 중 8개 팀이 2019년 이후에 해체됐다.

그리고 전국 7웅 중 하나라 불리고 2020 시즌 중국 슈퍼리그 우승을 차지했던 장쑤 FC(장쑤 쑤닝)이 모기업인 쑤닝그룹의 파산으로 하루아침에 갑자기 해체되는 충격적인 상황이 발생하며 중국 축구 내 축구단 해체 러쉬는 중국 축구 내 심각한 위기로 떠올랐다.

2010년대 AFC 챔피언스리그를 2번이나 우승한 광저우 FC는 축구굴기의 상징과도 같다. © 소후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축구굴기의 상징과도 같은 클럽으로 다롄 스더와 함께 중국 슈퍼리그 최다 우승팀(8회)와 2010년대 AFC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을 기록하며 중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대표 클럽으로 군림한 광저우 FC까지 이들의 뒤를 밟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021년 시진핑 주석은 다 같이 잘 살자는 공동부유론을 내걸고 중국 내 부동산 거품이 커지고 온라인 플랫폼 회사들이 거대해지자 ‘지속가능하지 않은’ 경제 성장에 대해 경계하며 대출을 규제하는 등 부동산 업계에 강력한 규제를 내걸기 시작하면서 부동산 사업을 하던 헝다그룹(에버그란데로도 잘 알려져있다.)은 홍콩 증시가 급격하게 하락하고 신용 등급이 두 단게나 강등되는 등(피치 기준.) 그룹 파산의 위험이 찾아왔다.

여기에 헝다그룹 쉬자인 회장의 지나친 차입 경영과 전기차 등 문어발식 사세 확장으로 인해 헝다그룹 내 자금 유동성 부족까지 더해지며 헝다그룹의 부채가 무려 130조 원에 달할 정도로 어려움이 커졌고 결국 10월 4일 홍콩증권거래소에서 에버그란데의 거래가 정지되며 앞날이 불투명해졌다. 이에 따라 광저우 FC의 존속 여부도 불가피해졌다. 이로 인해 구단 내 외국인 선수인 탈리스카와 파울리뉴 등 팀을 떠났고 9월 28일에는 파비오 칸나바로 감독과의 계약 해지를 발표했다. 구단은 주장 정즈를 임시 감독으로 선임했지만 잔여 시즌 불참 가능성까지 제기됐을 정도로 불안한 구단 사정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2021년 8월 26일 건설 중이었던 신구장과 주변 아파트를 공기업 광저우도시건설그룹에 양도했다.

2015년 경 중앙일보 송지훈 기자가 쓰고 네이버 매거진S에서 발행한 <생각보다 더 위협적인 중국축구 이야기>에서 현재 헝다그룹과 광저우 FC의 위기를 예언한 문구가 있다.

장밋빛 전망만 나오는 건 아니다. 슈퍼리그를 움직이는 '큰 손'은 대부분 부동산 기업들인데, 중국의 부동산 경기는 2000년대 초반에 반짝 호황을 누린 뒤 2013년을 기점으로 또렷한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다. 헝다그룹이 축구단 지분의 50%를 전자상거래회사 알리바바에 매각하고, 항저우 뤼청이 축구단 지분 24.3%를 정리한 게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상단 글을 요약해 본다면, 슈퍼리그 팀 상당수가 부동산 기업들인 점, 그리고 중국 내 부동산 경기가 또렷한 하락세를 겪고 있다는 점을 들어 중국 슈퍼리그에 장밋빛 전망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 지적은 2021년 현재 헝다그룹 파산 위기로 인한 광저우 FC 해체설, 부동산 기업을 모기업으로 둔 축구단의 재정난 등 상단 글에서 우려한 내용과 정확히 들어맞는다. 광저우 FC 이외에도 여러 팀이 부동산 사업을 하고 있는 모기업의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언제 또 어떤 팀이 갑자기 해체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광저우 FC의 감독이었던 파비오 칸나바로는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과도한 행정 개입과 샐러리캡 제도가 중국 축구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7~2018년 중국 슈퍼리그는 질 좋고 매력적인 리그였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일부 젊은 선수들의 출전 시간에 대한 규정(U23 의무 출장)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몇몇 선수들의 수준이 빅리그에 못 미치더라도 몇 분만이라도 경기에 출전시킬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규정까지 복잡해졌다."

"중국축구협회의 샐러리캡 도입 취지를 이해한다. 선수 월급이 너무 많다. 하지만 정책 출범 이후 중국 축구의 발전이 더뎌졌고, 많은 훌륭한 선수들이 중국 슈퍼리그를 떠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악셀 비첼(現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이 중국에 왔을 때 분명 돈을 더 벌기 위해 중국에 왔었다. 하지만 비첼은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비첼은 최고의 프로축구 선수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훈련, 경기, 식습관까지 말이다. (톈진 취안첸 시절) 젊은 선수들에게 비첼은 롤모델이었다. 모두 열심히 훈련해서 비첼의 축구 템포를 따라가길 바랬다. 그렇기에 이들의 이탈은 시스템적인 측면에서도 불황을 불러올 수 있다고 본다."

이처럼 칸나바로는 중국 축구의 과도한 행정적 개입을 지적하고, 샐러리캡 도입으로 인해 실력이 좋은 선수들이 이탈하거나 중국에 오지 않으면서 중국 슈퍼리그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축구협회는 샐러리캡뿐만 아니라 2020년 10월에는 선수와 코치, 직원의 급여를 기한까지 납부하지 않을 경우 프로 리그 참가 라이센스를 박탈한다는 규칙을 제저했다. 인건비 부분에서 과도한 거품이 낀 중국 축구의 거품을 빼고 구단의 재정 건전성 확보를 하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문제점도 생겨났으니, 우선 이런 정책들이 유예 없이 갑작스럽게 시행됐다는 것이다. 중국 현지에선 수입과 지출 규모가 불균형한 상황에서 유예 기간 없이 갑작스레 시행한 중국축구협회의 정책은 오히려 중국 내 축구단들을 파산과 해체로 이끌었다는 비판을 계속해서 제기하고 있다. 또 샐러리캡으로 인해 샐러리캡에 걸리는 외국인 선수들이 슈퍼리그를 떠나는 현상이 발생했다. 알렉스 테세이라(前 장쑤 FC), 그라치아노 펠레(前 산둥 타이산), 헐크(前 상하이 하이강)등 명성 있는 외국인 선수들이 중국을 떠났다. 이들은 계약이 만료되기도 했지만 새로 체결하는 계약은 철저히 샐러리캡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에 재계약하지 못했다. 칸나바로가 지적한 중국 행정의 문제점과 유명 선수 이탈로 인한 중국 선수 발전 위협을 괜히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광저우 FC 이전 중국을 대표했던 명문 구단 다롄 스더(大连实德). 8번 우승을 차지하며 광저우 FC와 함께 중국 슈퍼리그 최다 우승팀인 다롄 스더는 정치적 이유로 허망하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광저우 FC가 유구한 역사를 가진 중국 대표 구단이기에 인수자가 나타나 축구단은 쉽사리 해체하지 않고 존속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낙관하기엔 이르다. 광저우 FC와 같은 명문 구단 한 팀이 허무하게 해체된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광저우 FC와 함께 중국 슈퍼리그 최다 우승팀(8회)인 다롄 스더다.

1983년 다롄 FC로 창단한 뒤 그 해 을급리그(2부)에서 우승한 바로 다음 해인 1984년 승강제가 실시된 시즌에도 우승을 차지하며 갑급리그(1부)로 승격한 다롄은 1992년 FA컵 우승을 차지했고 1993년 다롄 화루로 1년 동안 활동하다 1994년 중국 갑급리그의 프로화에 발맞춰 완다그룹이 인수하며 다롄 완다로 중국 프로 원년을 맞이했다.

다롄 지역과 중국 내 거대 기업이었던 완다그룹은 막대한 투자와 함께 다롄은 프로 원년인 1994 시즌과 1996, 1997, 1998 시즌 리그 3연패 등 5년간 4번의 우승과 아시아 최다 경기 무패 기록인 1995시즌 중반부터 1997년까지 55경기 연속 무패행진, 1998년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기록하며 중국 내 최강팀으로 자리잡는다.

완다에서 스더그룹으로 주인이 바뀌어도 다롄은 중국 최강팀의 면모를 보여줬다. 2000 시즌 리그 우승, 2001 시즌 갑급리그, FA컵 우승으로 더블을 기록하고 2002 시즌 리그 우승으로 리그 3연패와 AFC 챔피언스리그 4강까지 올라갔다. 이 덕택에 쉬밍과 스더그룹도 엄청난 광고 효과를 보고, 이를 이용한 사업확장에도 성공하며 다롄 스더도 흑자를 기록했다. 쉬밍은 이 기간동안 항상 다롄 스더를 최우선으로 챙겼다.

중국 갑급리그에서 중국 슈퍼 리그로 이름을 변경하고 1년 후인 2005 시즌, 다롄 스더는 다시 우승을 차지하면서 엠블럼의 별을 8개까지 만들어놓고 이후 8성 다롄(八星大连)이라는 별명이 붙으며 중국 내 최강팀뿐만 아니라 명실상부 중국 슈퍼리그 내 명문 구단으로 자리잡는다.

이러한 다롄 스더의 상승세의 배경에는 다롄의 서기장 보시라이(薄熙來)의 역할이 컸다. 보시라이는 1993년 다렌 공산당 서기장으로 임명되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후 다롄 내 지역 조폭들을 잡아들이고 부패 공무원을 척결하며 다롄 시민들에게 큰 지지를 얻었다. 보시라이 서기장은 축구단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부동산 그룹 완다그룹과 보시라이의 경제적 후원자이자 오른팔인 스더그룹의 쉬밍(徐明)을 끌어들이며 다롄을 명실상부 중국 최강팀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다렌 스더는 아이러니하게도 보시라이에 의해 무너진다. 보시라이가 랴오닝성장으로 승진했을 때도 다롄 스더는 보시라이와 쉬밍의 등을 업고 성장해나갔다. 그러나 2012년 3월, 충칭시 당 위원회 서기장으로 보직을 옮긴 보시라이가 자신의 왼팔과도 같은 존재인 왕리쥔(王立军)을 공안부장 자리에서 해임하고 문화담당 부시장으로 발령냈다. 이는 표면상 승진이었으나 실제로는 실권 없는 자리로의 좌천이었다.

이에 왕리쥔은 청두 시 미국 영사관을 통해 망명을 시도하고 충칭 공안 병력이 청두 시 미국 영사관을 포위하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공안이 철수하고 국가안전부에 연행되어 베이징으로 압송된 왕리쥔은 보시라이의 부정부패 행각을 전부 고발했다. 같은 해 4월, 보시라이는 실각 이후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스더그룹의 쉬밍도 뇌물을 준 사실이 드러나 같이 감옥으로 가게 됐다. 이와 함께 스더그룹의 주가는 대폭 하락했고, 자연스럽게 다렌 스더도 존폐 위기에 놓이며 타 기업으로의 매각을 알아봤지만 이 때는 중국 슈퍼리그가 지금처럼 중국 내 대기업이나 재벌들이 투자하겠다고 달려들어 돈이 모이는 리그가 아니었고, 무엇보다 희대의 정치적 스캔들에 연루된 기업의 팀을 인수할 대기업이 없었다. 한때 다롄 스더의 이전 모기업이었던 완다그룹 왕젠린 회장한테까지 부탁해 보지만 거절당하며 다롄 스더는 낙동강 오리알같은 신세가 됐다.

다롄 스더의 결말은 너무나도 비극적이었다. 2012년 11월 30일, 다롄시 체육국은 다렌 스더가 약 3억 3천만 위안에 다렌 아얼빈(大连阿尔滨)에 흡수된다고 밝혔다. 다렌 스더 팬들은 지역 라이벌 다렌 아얼빈을 고깝게 봤다. 자신들의 팀이 라이벌 팀에 흡수되며 없어진다는 것을 들은 다롄 스더 팬들은 너무나 충격적이었을 것이었다. 다렌 스더 팬들이 다렌시 정부(다렌시청)로 몰려와 항의했으나 번복되지 않았고 2013년 다렌 스더는 공식적으로 슈퍼리그 참가 포기 의사를 중국축구협회에 밝히며 해체됐다. 이렇게 중국 슈퍼리그 8회, FA컵 3회에 빛나는 중국 최고의 명문 구단은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사례가 있는 만큼, 광저우 FC가 100% 반드시 존속된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 우선 중국 내 경제가 좋지 않고 카타르 월드컵 최종예선 선전을 위해 리그를 중단하고 국가대표팀 합숙을 하는 등 불안정한 리그 운영 등을 중국 내 타 기업들이 우려하며 인수에 눈치를 보고 있어 생각보다 인수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광저우시 체육국이 가능성도 나오고 있지만 중국은 정부나 지자체가 직접 구단을 지원하는 일은 거의 없다. 2019년 텐진 취안젠이 모기업인 취안젠 그룹의 사정으로 해체 직전 상황까지 오자 톈진시 체육국이 1년 기한으로만 운영한 후 매각이 안되면 해체하겠다고 미리 밝혔고, 2020년 매각이 되지 않자 바로 해체한 전적이 있다. 이 때문에 필자는 광저우시 체육국의 광저우 FC 인수가 광저우 FC가 겪고 있는 위기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축구굴기 프로젝트가 세상에 나온 지 어느덧 6년이 지났다. 축구굴기 6년 후, 중국 축구는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적극적인 투자와 지원이 있었지만, 불과 6년이 지나지 않아 중국 슈퍼리그에선 현재 팀이 여럿 해체하는 등 리그 사정이 불안정해지고 축구굴기의 궁극적 목표인 대표팀의 경쟁력 상승마저 외국인 선수를 대거 귀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4경기가 지난 현 시점에서 최종예선 5위를 차지하며 월드컵 본선 진출조차 불투명해지며 처음 제시했던 계획이 좋지 않게 흐트러지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축구굴기가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국 축구에서 처음으로 풀뿌리 축구 육성 정책을 실시했고 유소년 시스템을 갖춘 축구단이 늘어나는 등 비로소 중국 축구에 건강하고 미래지향적인 바람을 불어넣은 것이 바로 축구굴기의 의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 축구의 성장을 기다려줄 만한 인내심이 부족했다. 시진핑 주석의 눈치만 보며 장기적인 비전과 철학 없이 급하게 추진한 축구굴기의 결과는 상상 이상으로 암울하다. 하지만 과거 있었던 2번의 승부조작 스캔들이란 위기 속에 교훈을 얻고 개혁을 시행했던 것 또한 중국 슈퍼리그였다. 현재 위기에서 중국 슈퍼리그에게 주는 교훈은 한 가지이다. 모기업의 지원에 의존하면서 갑작스럽게 많은 돈을 쓰면서 단기간에 성장하기보다 장기적으로 바라보며 더 안정적이고 내실화된 구단 운영이 필요하다는 것. 중국 축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중국 축구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 그만큼 현 상황이 중국 축구 역사에 있어 중대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이 우리가 현재 중국 슈퍼리그와 중국 축구의 동향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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